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녹색 바니타스

 

하계훈(미술평론가)

서울아트 가이드 2019년 5월 전시리뷰

 

 

 

나무로 구체관절 인형처럼 뭄통과 사지를 연결해서 조립한 인체 모양의 대형연필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한국 사회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분접적인 사고와 행위에 대한 비판이자 풍자를 표현한 작품들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김석의 연필은 사람의 형상으로 흑백논리와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태도로 읽힌다.

 

 

 

 


 

 

 

 

김석-인체조각의 개념적 진화

홍지석(미술평론)

 

ARTIST REVIEW (2016년 월간미술 12월호)

 

 

조각가 김석의 작업을 정의할 하나의 단어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일지 모른다.

그의 작업은 정체되거나 가둬진 의식을 뒤로하고 지속적으로 과거에 건네는

작별 의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파편화 되었고 물리적, 감각적 피부를

제거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유턴했고 상충하는 인식 간 접점으로 수렴했다.

최근 열린 김석의 개인전 <미메시스 풍경>(2016.10.19-11.7, 예술의기쁨)을 계기로 그 수렴의 지점을 살펴본다.

 

 

김석의 조각작업은 인간형상을 다루되 그것을 껍데기의 형태, 또는 껍질과 같은 것으로 형상화하는 식으로 시작됐다. 1989년의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996인간의 기억까지 그의 조각은 잔해처럼 남겨진 몸뚱아리”(이섭) 내지 신체의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소멸, 왜곡된 비정형적 인간상”(김복영)을 문제 삼고 있었다. <인간의 기억>에서 깨지고 잘려진 신체의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선반 같은 곳 위에 나란히 놓이는 식으로 또는 바닥에 흩어져 나뒹구는 식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러니까 이 작가에게는 처음부터 완전하고 통합된 인간형상은 주어져 있지 않았던 셈이다. 오히려 그것은 거부의 대상이었다. 당시에 그는 이것을 일종의 휴머니즘의 실천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현대인의 존재상황으로서 안정되지 않은 정신적 병리현상을 나타내려 했다”(이주헌과의 인터뷰, 1995)는 것이다.

 

그런데 이 깨진 파편들을 가지고 조각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파편들을 이어 붙여 잠정적이나마 어떤 전체상을 확보하는 길이 있다. 확실히 파편들을 이어 붙여 어떻게든 원형(原形)에 상응하는 전체를 구하는방법은 정신의 병리현상(분열증)을 완화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당시 김석은 그런 접근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 전체상이 의심스럽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1996년 이후 초기 인체조각 파편이 그나마 간직하고 있던 인간적 성격, 즉 인체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를 들어 인체 특유의 부피를 제거하는 방식이 있다. 앞서 나는 김석의 초기 인체 조각이 껍데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강조했는데 그렇게 껍데기와 같은 것이 됨으로써 그의 초기 인체조각은 거의 부피를 갖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덩어리(mass) 같다는 느낌도 희박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부피, 또는 덩어리의 흔적-김석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기억”-이 남아있었는데 199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 또는 <()> 연작에서는 그 흔적조차 거의 지워지게 된다.

 

<><> 연작은 납작하게 눌려 부피가 사라진 두상의 윤곽(실루엣)을 최소한의 두께로, 또는 공허한 부피(텅 빈 공간)로 제시했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이전의 인체조각이 간직하고 있던 서술성이나 표현성을 배제하고 인간의 형상을 단순하게 또는 냉랭하게 전달했다. 그것은 분명 인체를 지시하지만 그 지시대상인 인체와 공유하는 바가 극히 적다. 그러나 그것을 인체와 무관한 사물로 볼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여전히 인체를 지시할 정도의 요소(두상의 윤곽)는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9년에서 1998년 사이 김석의 작업은 통상적인 의미의 인체조각에서 인체성이나 인간적인 의미를 최대한 배제하는 쪽으로 진행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1998년 전후에 그의 인간형상은 텅 빈 상태가 됐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작가는 텅 빈 공간을 뭔가로 채울 필요를 느낀 것 같다. 1998년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김석은 납작한 두상 윤곽 내부의 텅 빈 공간을 곡식, 쇠조각, 나무조각, 인쇄물, 연필, 건전지, 인형 같은 것으로 채우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렇게 인체의 텅 빈 윤곽안쪽을 세계의 사물들로 채우는 작업은 곧 그 내부를 세계의 지식들로 채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무게와 부피가 소멸되어 텅 빈 공간을 지식으로 채우는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식의 무게 >(2000)에서 석고로 만든 인간 두상을 받치고 있는 것은 가느다란 철봉이다. 바닥으로부터 솟아나 있는 철봉은 두상의 무게로 다소간 휘어져 있는데 그것을 관객이 건드리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가하면 나무합판으로 만든 <지식의 깊이>(2000)에서 인간 두상의 실루엣을 지닌 심봉은 원형 틀에서 마치 피스톤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유형의 작업은 2001<지식의 무게를 자각하는 지식>에서 극대화됐는데 이 전시에는 <지식의 무게 >에 등장했던 머리들이 모두 365개 선보였다. 작가 자신에 따르면 이것은 하루 동안에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양과 일 년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양을 시각화한 것이었다. 이렇게 비가시적인 것(지식)에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를 부여하려 했다는 점에서 2000년 전후 김석의 작업은 다분히 개념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와 같은 개념적 성향은 2003년에 열린 휴머니즘의 소리에 등장한 <인간의 소리>, <나의 소리>, <무게의 소리>에서처럼 비물질적인 소리에 물질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형태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진짜와 가짜, 원본과 대리물 사이

그러나 비물질적인 것들(지식, 소리)에 물질적인 형태나 가시적 외관을 부여하면 그것은 더 이상 본래의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원본(비물질적인 것)의 대리물, 또는 기호일 따름이지 원본 자체는 아닌 것이다. 2003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이 문제는 김석 조각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시체와 지시대상, 원본과 대리물, 기의와 기표의 관계를 따져 묻는 일련의 작업들로 구체화됐다. ‘내가 과연 나일까(2003), ‘부재한 진실(2007)에서 김석은 형상의 윤곽 내부에 비가시적인 것들을 채우는 이전의 방식으로 욕망들로 채워진 붉은 십자가를 형상화하거나-<부재한 진실들 - ‘이것은 sign입니다.’>(2007) 투명비닐로 덮은 금색 브론즈 조각-<부재한 진실들-‘감싼 것과 감싸여 진 것’>(2007)을 통해 기호의 지시작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2003~2007년 사이는 김석 작업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진지하고 심각한 시기에 해당한다. 당시에 그는 진짜와 가짜, 원본과 대리물 사이 어디쯤인가에서 그 양자의 거리를 좁힐 가능성을 탐색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시도는 양자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식으로 끝나버렸다. 그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금 조각가는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2009년 무렵 시작된 “Happy"를 주제로 내건 일련의 작업들에서 김석은 존재하는 모든 형상들은 모조와 같은 착시 이미지가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모조의 세계에서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사라져있다는 것이 이 무렵 그의 판단이었다. 이런 문제의식과 더불어 그간 배제됐던 것들이 그의 작품에 등장했다. 가령 이 작업들에서 얼굴의 이미지는 다시금 부피와 깊이를 갖게 됐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그 부피와 깊이를 약화시키기나 상쇄시킬 요인들, 즉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줄무늬), 플라스틱의 반짝이는 질감, 회화적 환영, 착시, 왜상적 요인들을 더했다. 또는 레디메이드(자동차 본네트)가 조각(부조)적 환영, 회화적 환영과 주도권을 갖기 위해 쟁투를 벌이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이 작품들에서는 의미의 포착이나 결정보다 계속적인 의미의 변화-사라졌다 곧 다시 등장하는 갖가지 의미들-이 중요해졌다.

 

        

◀ mimesis scene -Homo sapiens sapiens / 230×140×60㎝ / wood, iron, paint, plaster / 2016

▶ mimesis scene -Melancholy man / 105×87×207㎝ / wood, iron, acrylic, paint / 2016

 

 

그런데 김석은 최근 ‘Mimesis Scene’(2016)에서 다시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특히 그가 ‘Pencil Work'로 명명한 작업들이 흥미로운데 이 작업은 분명 지식의 무게를 문제 삼던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지식자체의 물질화, 가시화에 몰두했던 과거와 달리 지식 추구로서 사유라는 행위 자체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멜랑콜리 맨Melancholy Man’이라고 이름붙인 연필 형태의 구조물은 사유하는 인간의 형상을 닮았는데 그 위에는 아크릴 구가 덮여있다. 그 형상은 과거 철봉 끝에 매달려 흔들거리던 어떤 두상을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한결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조각가가 멜랑콜리에 빠져들기보다는 멜랑콜리를 관찰하는 태도로 작품 제작에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석,    행복을  권하는 사회

 

Review (2011년 11월 그림손 갤러리)

고 충 환 (미술 비평가)   2011년 계간조각 겨울호

 

 

      

            I AM  HAPPY  1                      I AM  HAPPY  2                          I AM  HAPPY  3

 

    무지개 빛깔의 거대한 막대사탕 위에서 한 얼굴이 웃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물의 됨됨이에 대한 선입견을 형성시켜주는 정보 혹은 구성요소 중 크기에의 인식은 결정적이다. 초현실주의자에게서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크기가 달라지면 낯설어지고 그로테스크해진다. 아방가르드주의자에게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낯설게 하기는 선입견의 견고한 성채를 해체해 행간읽기와 이면읽기에로 유도한다.

    사물의 됨됨이는 겉보기와는 다르다. 겉보기는 파사드고 스펙터클이다. 파사드는 구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수한 표면장식에 지나지가 않는다. 그리고 스펙터클은 이면을 표상하는 표면이 아닌, 그저 표면일 뿐인, 그 자체 순수한 표면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이처럼 순수한 표면을 원한다. 액면 그대로를 원하고, 존재가, 존재의 이미지가, 존재의 의미가 액면 그대로 소비되기를 원한다. 이면과 행간은 자본주의의 욕망에 거스르는 것이다. 사물의 됨됨이는 명명백백해야 한다. 암시와 상기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당신을 액면 그대로 믿기로 했다. 무지개 빛깔은 행복의 색깔이다. 그 행복의 색깔과 더불어 당신의 얼굴은 웃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신의 웃고 있는 얼굴이나 그래서 행복하다는 말이 액면 그대로라면 당신은 분명 행복하다.

    당신이 기꺼이 웃고 있고 기꺼이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도 재고의 여지도 없다. 당신이 무지개 빛깔의 거대한 막대사탕을 빨면서 웃고 있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적어도 외관상 보기에 진실이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서 당신은 오히려 막대사탕처럼 보이고, 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I AM  HAPPY  4                  I AM  HAPPY  5                     I AM  HAPPY  6

 

    누군가의 사랑스런 막대사탕이 되어 그의 탐욕스런 혀를 달콤하게 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작 당신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반어법이다. 작가는 웃고 있는 얼굴을 보여주면서 울고 있는 현실을 암시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상기시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순수한 이미지며 표면적인 의미들로 상품화되고 낱개 포장돼 누군가에게 소비되고 있을지도, 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작가는 자동차 본네트(후드) 위에 얼굴을 주조해 부가하는데, 방법으로서 패러디를 도입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이를테면 자가용의 귀족 BMW의 로고를 차용하고, 대중문화의 스타 캐릭터 베트맨의 가면 문양을 차용한다. 흔해 빠진 게 자동차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가용하면 욕망의 대명사로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그것이 삐까번쩍한 BMW라면 더더욱 그렇다.

 

    현재 자가용은 단순한 운송수단 이상의 사회적 하이어라키의 지표가 되고, 그 자체 사물계급론의 증표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물의 사용가치는 그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빈자리를 물화와 물신이 연출해주는 아우라가 차지하고 있음을 침묵으로써 증언해주고 있다. BMW는 자본주의 시대의 남근이다. 힘센 놈, 강한 놈, 잘 생긴 놈, 능력 있는 놈으로 우뚝하다. 우뚝할 만하고 우뚝 설만하다. 적어도 그것이 BMW라면.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BMW를 소유함으로써 나는 저절로 능력 있는 놈으로 인정받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BMW와 내가 동일시되는 것에 대해서는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은 나 자신의 물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나는 불행하다. 내가 사물일 수는 없으므로. 그리고 베트맨 가면 문양은 영웅이 없는 시대의 가짜 영웅을 증언해준다. 가짜 영웅은 영웅이 없는 시대를 증언해주고, 그래도 여전히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어온다.

 

          

    I AM  HAPPY  7                         I AM  HAPPY  8                            I AM  HAPPY  9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반어법적이다. 우는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불행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행복한 얼굴을 보여주고, 물화된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BMW를 호출하고, 영웅을 상실한 시대를 증언하기 위해서 베트맨을 불러들인다. 현실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겉보기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 작가의 작업은 주의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그리고 위장복 문양 위에 덧그려진 웃음 마크가 씩 웃고 있다. 그 웃음이 겉보기에 웃음처럼 보인다. 혹 속이 보이는 웃음인가. 작가는 이 알쏭달쏭한 웃음을 위장처럼 내밀고, 무슨 화두처럼 제안한다.

 


 




자동차 보닛 위에서 웃고 있는 스타들은 행복할까

 

 

조각가 김석,

'여러분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전시 2일~8일

왕진오   기자 /  2011년 10월-31일

 

 

축구 스타 차두리,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영화 주인공 배트맨의 얼굴이 자동차 보닛 위에 강열한 인상으로 그려져 있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조각가 김석(48)이 자신과 우리에게 질문한 '아임 해피'라는 부제로 진행하는 전시장의 모습이다. 지난 시간 작가는 인체조각에 매진하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이야기했다. 11월 2~8일 인사동 갤러리그림손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소비 사회를이야기하는 가장 대표적인 아이콘인 자동차를 이용한다.

 

                             

▲ 좌측그림/ 김석, '아임 해피'. 160×150×58cm, 철판(자동차 보닛), 폴리에스터 페인트, 2011.

▲ 우측그림/김석, '아임 해피(차두리)'. 150×130×40cm, 철판(자동차 보닛), 폴리에스터 페인트

 

 

    그가 자동차 보닛이라는 특별한 물성에 유명인들의 모습을 중첩시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행복'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2년여의 작업 시간을 투여했다는 그는 '아임 해피'라는 전시 제목에 대해 "역설적으로 표현해 본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라며 허허 웃는다.

 

        

▲ 김석, '아임 해피(배트맨)'. 155×135×35cm, 철판(자동차 보닛), 폴리에스터 페인트, 2011

▲ 작품 설치 전경. ⓒ2011 CNB뉴스

 

 

    일반적인 조각 작품과는 다른 이번 전시작품들에 대해서 김석 작가는 "아마도 자동차 보닛을 조각에 활용한 것은 제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닛 평면에 입체적인 얼굴을 조합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며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웠습니다"고 전했다.

    이번 '아임 해피'시리즈 조각은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인들의 얼굴과 남녀 세대별로 규정되는 대표적인 얼굴들을 등장시킨다. 그 얼굴의 미소와 웃음은 끊임없이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공허하고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작품의 속성이 작가 김석이 보여주려는 이번 전시의 주요 주제이다. 화려하게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기스타, 영화 속의 영웅들도 그 이면에 고독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는 곧 현대 도시사회를 살아가며 고민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물질만능의 현대사회 속에서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번 작품들은 재료, 기법, 과감한 색채, 팝아트적인 느낌과 함께 철학적인 의미를 동시에 전달한다.

 

    조각가 김석은 "고민한 작업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의무가 아니겠어요, 예술성도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며 작가로서의 주장을 제기하지 못한다면 공허한 외침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석 조각전 ‘I am happy’

이창호 기자

 

    고급 승용차의 본네트 위에 차두리, 안젤리나 졸리, 배트맨이 알록달록 가면을 쓴 듯 얼굴로 얹어 있다. 색색의 줄띠로 화장한 듯한 손담비의 얼굴도 걸려 있다.

웃는 모습 같기도 하고, 괴성을 지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 김석(48) 교수가 지난 3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운동 그림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 개인전 ‘I am happy’에서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술 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김석의 근작에 대해 “표정 있는 얼굴만을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 그리고 플라스틱 질감과 반짝이며 발광하는 빛, 회화와 저부조가 긴밀하게 결합한 형식”이라고 평가했다.

 

    조각에 과감하게 색채를 덧씌우는 새로운 작업이 주목받고 있다. 김석의 작업은 인간의 신체와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에 회화적 기법으로 얼굴 위를 처리한 것은 얼굴의 형태를 망각시키거나 훼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행복한 웃음’을 뒤엎는 행위다. 색채 기호들이 행복과 위안을 약속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웃음 짓는 얼굴을 누르거나 억압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김석의 작품 속에 도입된 인물들은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스타들이다. 화려함 또는 아름다움, 건강함, 재력 있음으로 상징되는 인물들 역시 늘 행복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자위하며 산다.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양면성을 평면과 공간, 색의 대비 등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이 전시는 오는 8일까지 계속된다.